경기도미술관 2019년 신소장품, 온라인 공개9월부터 매주 2작품씩 9주 동안 신소장품 중 18작품을 도민에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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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경 작가는 1976년 서울 안국동의 서울화랑에서 <4인의 이벤트>에 참여했다. 이때 첫 신문읽기 ‘이벤트’를 실연했다. 그가 말하는 ‘신문읽기’는 신문을 읽고, 읽은 부분만을 면도칼로 오려내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말한다. 시작은 <신문:1974.6.이후>(1974)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전시 약 2달 전부터 전시기간 종료 시까지 매일 발행되는 동아일보를 배달 받거나(집) 구입하여(전시장) 기사 부분만을 오려내어 바닥에 설치한 반투명 청색 아크릴 통 속에 투하하고, 기사가 제거된 너덜너덜한 신문은 벽면에 부착해 놓은 흰색 패널에 다음 날까지 전시하면서 당일 신문이 새로 발행되면 하루가 지난 벽면의 신문을 떼어내 청색 아크릴 통 옆에 위치한 투명 아크릴 통 속에 분리 안치하며, 새 신문으로 교체하는 같은 행위를 매일 계속 반복 수행하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신문읽기>는 1970년대 당시 ‘이벤트’라 불린 행위예술이다. S.T(Space&Time)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행위예술을 선보였던 그의 작품 중에서 <신문읽기>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특히 <신문읽기>에 주목하는 것은, 행위와 행위의 결과를 구분해서 나눌 수 없는 일체형 퍼포먼스라는 점이다. 신문을 구입해서 낭독하고, 낭독 부분을 오려내고, 다시 낭독과 오려내기를 반복하는 ‘수행성’이 퍼포먼스의 중핵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신문읽기>는 한국 행위예술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경기도미술관은 2010년 12월 24일부터 2011년 3월 20일까지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팔방미인>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는 소장품 기획전이었으나, 한국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1970~80년대 개념미술을 주제로 소장품뿐만 아니라 활동 당시의 작품과 자료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한 아카이브 전시였다. 작가는 이 전시 개막식에서 1976년의 <신문읽기>를 2010년 버전으로 수행한 바 있다.
홍명섭, <de-veloping ; the wall>, 벽에 종이를 찢어 붙이기, 1978
홍명섭 작가는 1978년 대전문화원의 첫 개인전에서 이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할 당시 작가는 “잊혀진/무의식적 공간현실과 벽면 현실을 양성화하여 생생한 시각현실로 회복시킬 수 있을 때, 인식 저 너머의 새 현실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1986년에는 “그것은 대체로 보존 될 개체성의 의미가 없는 것들이어서 생활을 궁리하듯 끌어나가고 용변을 보듯 수월히 행하며 집착 없이 끝나며 쓰레기처럼 결과물들은 폐기되곤 한다. 이렇게 생명의 주기와 닮은 ‘일시성(temporality)’의 본성과 함께 형식의 파기 또한 흥미로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970~80년대 개념적 설치미술을 수행했고, 그 수행성의 작업들은 고스란히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매우 독창적인 지표가 되었다. 그의 많은 작업들은 결과로서의 ‘품(品)’이 아닌, ‘작(作)’에 집중한 결과였다. ‘짓다’, ‘일으키다’, ‘일어나다’의 ‘작’은 ‘~하기’의 수행성을 보여줄 뿐, 어떤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가 “생명의 주기와 닮은 ‘일시성’의 본성과 함께 형식의 파기 또한 흥미로운 것”이라고 고백하거나, “마음에 갇혔던 신체, 정신에 갇혔던 물상, 의식에 갇혔던 물성에서 해방되는 자재의 수평을 향해 흐르는 감성”이라고 말할 때, 그가 지향하는 미학적 목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설치작품 <de-veloping ; the wall>은 그의 미학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증좌이고, 그래서 홍명섭이라는 작가의 위치를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가늠할 때 선명하게 살펴야 할 의미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품의 성격이 “전시 후 작업 잔여물은 파기 되어야 한다.”는 개념적 설치 원칙 때문에 그동안 어느 곳에서도 소장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여러 기획전에서 그 스스로 설정한 설치 매뉴얼에 따라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고, 그것은 ‘개념적 설치미술’의 한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